경성의 풋뽈, 그리고 경평축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남과 북의 관계가 개선된 분위기에 발맞춰 일제강점기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의 경평축구대항전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각종 축구대회를 다룬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서울시가 경평축구대항전의 부활을 추진하는 요즘, 이번 전시가 경평축구대항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1. 한복입고 상투틀고 돼지오줌보를 뻥!
우리나라의 근대축구는 1882년 제물포에 정박해있던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 선원들에 의해 소개되었고, 이후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근대 스포츠를 교육하면서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구한말 축구는 오늘날과는 달리 넓은 공터에서 한복차림으로 짚이나 소?돼지의 오줌보로 만든 공을 차던 모습이었습니다.
2. 산아이거든 풋뽈을 차라!
1910년대 전후로 축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제강점기에는 다양한 축구대회들이 열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전조선축구대회(1921-1940), 전조선도시대항축구대회(1936-1942), 경성ㆍ평양ㆍ함흥 3도시대항축구전(1938-1942)은 대부분 경성운동장에서 열렸고 전국민의 열띤 호응을 받았던 대회였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조선인이 한곳에 모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일본이 1942년 구기종목을 전면금지 시키면서 이러한 대회들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3. 경성과 평양, 축구 라이벌이 되다_ 경평축구대항전
일제강점기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승부를 겨룬 경평축구대항전은 1929년 10월 9일 1회를 시작으로 해방 후 1946년 3월까지 총 8회 대회 23경기를 치렀습니다. 당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략 7천 여 명에서 2만 여 명에 다다르는 관중들이 모이면서 경성-평양 간 기차가 응원인파로 만석이었고, 열띤 호응으로 경기 진행이 어려워지자 관중들에게 인분을 끼얹어 저지시킬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4. 45년만에 우리 다시, 남북통일축구대회
1988년 7.7 선언 이후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1946년 평양에서 마지막 경평축구대항전 이후 45년만에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이후 2002년 남북통일축구대회, 2005년 8.15 민족대축전 남북축구가 열려 남북간의 친선을 다질 수 있었으나,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고 단발적으로 끝나 경평축구대항전의 역사성을 잇기에는 부족했습니다.